부산 조폭/건달의 역사와 현재의 모습

오픈이슈|2019. 6. 24. 17:55


오늘은 부산에 대한 사람들이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는 부산 조폭/건달의 역사에 대해 기술해 보겠습니다.


보는 시각. 건달의 시각에서 또는 경찰의 시각. 또 그들과 사업을 함께한 여러 사업가들의 후술등에 각각의 차이는 있으나 큰 줄기는 맞으나 여러 디테일한 부분에선 각각의 차이와 과장 왜곡 과소평가등도 있을수 있는 점 미리 말씀드립니다.


이 글은 관에서 근무했던 이들의 표현이 주를 이룬다 보면 됩니다.


1. 배경


부산은 지역상 부산포 부산항이란 무역항으로 인해 조선시대 부터 왜관, 동래상등 상업인들이 많았던 지역입니다.


상업인들은 농경인과 달리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 이권에 대한 흥정을 하게되다 보니 자연 무뢰배들이 생기게 되어 있고 6.25 동란시절 전국의 피난민들이 부산에 내려오면서 그 형태가 잡히기 시작합니다.


먼저 부산의 전통조직은 칠성파와 20세기파, 영도파로 분류됩니다.


이들은 과거 부산의 시내라 칭해지던. 충무동 남포동 광복동 자갈치등에서 활동하던 이들입니다.

한 동네에 있다 보니 서로들 아는 선배 후배 사이들이 다방과 당구장에서 만나 입지있는 선배들 밑에서 자연적으로 계보가 마련됩니다.




2. 칠성파


70,80년대 수산업 부흥의 원산지인 부산에 있다보니 자연스레 이권들이 생기고 힘쓰는 이들이 필요하다보니 동네의 건들건들한 행님과 동생들이 이권에 개입하면서 칠성파가 생겨났습니다.


세븐스타 다방에 모이다 보니 칠성파가 되었다는 썰과 써클이름이 세븐스타였다는 애기등이 있으나 결론은 검찰들이 조직이란 형태를 파악 구분하기 위해 이름을 작위적으로 짓다보니 칠성파가 된 것이죠.


가장 먼저 자리잡은 칠성파를 이강환 회장이 이어 받으며 당시 수산업 부흥에 힘입어 부산에서 각종이권을 맡으며 전국 조직으로 발전합니다.


이강환 회장의 본가가 요리집 요정집을 했는데 어릴때 소아마비를 알았던 이강환을 위해 아낌없는 지원으로 이강환 회장을 담력 좋은 사람의 품성으로 키워냅니다.


이후 부산자체가 돈이 많았던 도시이기에 서울로 진출 안해도 먹을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경상도 조직들을 모아서 이강환 회장은 화랑신우회를 결성하면서 전국구 회장자리에 오르게 된다. 


이후 양은이파, 서방파 김태촌과 서울권에서 황제자리를 다투던 오비파의 이동재와 서울진출권 때문이라고는 할순 없지만 여튼 전쟁위기까지 가나, 둘의 힘싸움때문에 그냥 넘어갑니다. 




이후 칠성은 서울 진출보다 오히려 일본 야쿠자와 교다이(형제) 등을 하면서 서울권을 뛰어넘는 국제화의 물꼬를 트며 서울 조폭들의 칼싸움 양태를 뛰어 넘어 버리며 남쪽의 건들수 없는 지역으로 만들어 버리며 최고 극점을 맞이합니다.


노태우의 범죄와의 전쟁으로 전국구 두목들이 모두 잡혀 들어가며 범단법 4조 1.2.3.4 항으로 대한민국 조폭세계는 재편됩니다.


큰고기를 잡으니 작은 고기들이 보다 치밀한 방법으로 호수를 점령하는 풍선효과가 나타나는데, 부산에서도 후계자 문제로 굳건한 칠성파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일본 야마구치구미 후계자 싸움처럼 이강환 이후 칠성도 그 분란으로 인해 신칠성이 분가하는 사태를 맞이합니다. 


부산현장에서 활동하던 부두목 모씨가 아닌 건달이미지 세탁하며 서울에서 수완좋은 사업가 활동하던 한모씨가 후계자로 낙점됩니다. 


부두목 모씨는 동생들을 이끌고 신칠성을 만들어 버립니다. 당시 입지있던 현장실세들이 한번에 넘어가며 덕분에 철올성 칠성이란 이미지가 깨지며 부산에 여러 조직들이 생겨나기도 합니다.




허나 한모씨 역시 수완좋은 사업가 답게 분란을 독점권력은 약화시키며 지부형태로 나눠버리며 칠성을 한번에 확장해 버립니다.


칠성본가. 광안칠성(신칠성) 온천칠성. 서동칠성. 기장칠성 등 각지분파를 프렌차이즈화 시켜버린 것이죠.

따로 해석해보면. 칠성vs신칠성 구도 보다 칠성본가외 모두에게 지부장 자리를 주며 신칠성 힘을빼며 더 확장해 버린 것이죠.


이때부터 의외로 광주 출신 건달들 경남건달들과 칠성등이 한데모여 일을보는 경우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한모씨 역시 4조1항으로 잡혀간후 칠성의 후계구도는 알려지지 않은채 모호하게 운영되며 친구1의 유오성역의 정모씨가 부두목으로 서울지역에서 활동하며 범서방파와 서울 전투 직전까지 갔으나 역시 몇년전 까페에서 체포되어 구속 되었습니다.


3. 영화매체에서 7성파


유독 부산건달사가 영화매체로 많이 만들어졌는데, 각색도 많지만 큰 줄기는 실제와 비슷하다 보면 됩니다. 대표적인게 친구 1, 2 그리고 범죄와의 전쟁입니다.


친구 1 은 시나리오 자체가 그대로 구현되었다 보면되고, 친구 2 역시 흥행은 실패하며 각색은 많이 되었지만 정모씨 출소이후 한모씨와 갈등과 분파된 칠성파 모습 그리고 재기 과정까지 큰 줄기는 비슷하다 보면 됩니다.


범죄와의 전쟁은 칠성파와 영도파의 대립과 발전을 20세기와 엮어서 구현되었다 보면 됩니다. 범죄와의 전쟁의 최형배, 김판호 또 호텔오락실 이권의 최형배 모두 실존 모델입니다.




4. 스무세기파

60년대부터 남포동일대에서 거대 칠성과 항시 견제를 이루던 그룹입니다.

특이하게 20세기, 신20세기, 재건20세기, 통합20세기 등 한줄기에서 나온 그룹인데 같이 병존도 하고 계보를 물려받기도 하고 여러 형태로 세대교체가 많이 이뤄진 그룹입니다.

최고 전성기때가 신20세기때 인데 통칭 20세기 라 부릅니다.
이 이름 역시 칠성다방과 마찬가지로 남포동 당구장, 다방이름중 하나를 검찰이 구분하여 통칭 되어진게 사실입니다.

20세기는 해산 은퇴 분가등 여러 부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칠성에 흡수되지 않고 부산의 2대조직으로 건재한건 남포동 광복동 상권과 오락실을 기반으로 알짜 돈되는 사업을 한게 주 요인 입니다.

싸이즈는 칠성보다 작아도 칠성을 받아친건 자금력 때문입니다. 과거 20세기는 인턴때도 돈이 나왔다 할 정도로 자금력이 받춰줬기 때문이죠.



80년대 김영춘 회장이 은퇴하면서 부두목 행동대장등이 분파하면서 재건 통합 신20기등 여러 갈래로 나뉘나, 범죄와의 전쟁이후 90년대 당시 30대로서 괄목할 성장을 이루던 홍0수씨가 신20세기로 통합하면서 최전성기를 맞게됩니다.

이후 부산시내권 타 그룹들과 함께 반 칠성벨트를 만들어 칠성에 대항하기 합니다. 당시 유명한게 부산영락공원 습격사건 등 해운대 서면에 봉고차타고 칠성 잡으러 다닌 사건까지 분쟁이 잦아집니다.

이후 홍0수 두목이 잡혀들어가면서 후배 동생등이 행님만 잡혀 들어갈 순 없다며 자수하는 형태로 20세기가 완전 와해 되는 퍼포먼스도 벌입니다.

기실 홍0수 두목이 4조1항을 피하기 위해 검찰과 거래하며 퍼포먼스를 벌였다는 애기가 정설입니다.
아직도 20세기는 건재합니다. 물론 건달사회 자체가 먹을게 없어져 다운된건 맞지만요.

90년대 에피소드론 당시 고가의 푸마청바지가 유행했는데 그게 20세기의 출근복이였기 때문에 시내에서 그거 입고 다니다 맞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5. 영도파

영도파는 칠성과 연이 깊은 조직입니다. 초창기 칠성이 확장할때 부두목으로 현장을 뛰었던 천0남 회장의 개인적 소조직이 시초였습니다.

천회장은 그 이름 만으로도 전국의 두목급 순위에 이를 정도로 조직보다 두목의 입지가 더 있던 조직인데, 칠성과 틀어져 나와 영도파를 이루게 됩니다. 

칠성속의 영도파는 처음부터 내부조직이 아닌 연합조직 정도로 보면 되구요. 이후 카지노가 유행할때 카지노 이권을 거머쥐며 칠성 20세기와 더불어 전국 10대 조직에 이를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이후 20세기와 더불어 반칠성벨트에 속하기는 하지만 말이죠. 20세기와도 숱하게 분쟁을 벌이는 조직입니다. 먼가 영도는 돌깡패 분위기가 있습니다.

부산서 가장 대마이 쎈 지역이 남포동인데 남포동 사람들도 영도다리 건너가기 부담스럽다 할정도의 애기가 있을 정도입니다. 영도는 부암동과 함께 부산 주먹잽이를 많이 배출한 곳입니다.

범죄와의 전쟁 보면 카지노 이권등에 개입으로 공중전화 부스서 잡히는 판호가 바로 천회장입니다.



6. 각 지역 조직들

노태우 정권이후 기존 세력들이 무너지고 와해되며 시내란 원도심 말고 부심지역에서 선후배들이 모여 토착조직들이 탄생하게 됩니다.

보통 시내에서 후계구도에서 밀려나 범죄와의 전쟁에서 빗겨난 형님들이 주축도 되고. 그 동생들이 만들기도 하며 새로 생긴 부도심지역에 군웅할거 처럼 생겨납니다.

유태파, 하단오거리파, 하단식구파, 연산파, 연산식구파, 부대식구파, 서동파. 이중 초량육거리파와 서면의 물개파는 순식간에 일어나 위세를 떨치다 한번에 없어진 무투파 조직입니다. 

초량육거리는 동네자체가 대마이 쎈동네로 순식간에 입지를 얻으나 손모씨등 약관련등으로 스스로 붕괴되며 나중 영도파에 흡수됩니다. 



물개파 역시 아이템으로 무장해 서면일대에서 무서운 그룹으로 불리웠지만. 아이템사용으로 역시 자연스레 없어집니다.

유태파는 서면과 조방앞에서 돈되는 조직으로 부두목 입지가 더 유명할 정도로 위세를 떨치나 소리 소문없이 약해집니다.

나머지 부대식구파니, 연산파니 하는 조직들도 반 칠성벨트를 만들었지만 자연스레 칠성의 분파에 들어가 버립니다. 80년대 바나나 사건으로 유명한 온천장의 전통조직 동방파 역시 온천칠성으로 교체됩니다.

7. 현재의 조폭/건달

예전엔 먹을게 없어 건달하던 시대에서 자신의 사업을 위해 조직에 몸담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아직 전통 조직에는 숙소생활 유지하지만 다수의 조직들은 알아서들 자기 사업하다 힘 과시할때 모이는 형태로 바뀌었습니다.

이권사업이 줄어들며 알아서들 벌어 먹어야 하는 시대가 왔기에 알아서들 술집 안마방 등을 차리며 먹고살다가 행사할 때 서로 모여 조직의 위세를 과시하는 정도입니다.



그 행사란게 조직들 모여서 돌잔치, 칠순잔치, 결혼식 하는게 그들의 행사입니다. 현재는 이 행사가 주요 사업이죠.

기존 조직들이 전통사업에 치중하며 쇠퇴한 반면, 굳이 조직 만들지 않고 토토, 온라인 도박사이트 등으로 돈을 번 반달들이 넘쳐납니다. 

돈 많은게 장땡이라고 이들이 힘과시 할때 비용으로 건달들 동원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범단 4조법으로 인생 날려먹더니 조직이란 형태를 버리고 일본의 폭주족들이 발전한 반달모임체 한구레 처럼 진화할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특이점은 예전에 비해 은퇴한, 은퇴당한, 물맛만 보다 나온 인턴들이 넘쳐납니다. 그만큼 현재는 매력적인 직업군이 아니란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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